어느 집이든 매년 추석을 앞두곤 벌초를 한다.
어쩌다 보니 일찍 아버님 한테 바톤을 넘겨받아 벌초를 책임진게 20년이 넘어 버린듯 하다.
이전 벌초는 기억이 잘 나질 않는데
아마 낫으로 일일이 묘를 깍던 기억이 흐릿하게 있는데
어느순간 제초기 라는것이 온산을 울리게 된지라
우리도 제초기를 처음 사용한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매년 무성하다 못해 아예 정글?을 이룬 상태를 보면서
올해는 자주 찾아와서 틈나는데루 관리를 해야지 하구 맘 먹은게 벌써 20년이 된것같다.
맘이야 그리 먹지만 어디 그게 쉬운가?
추석 지나면 그냥 잊구 지내다 다시 벌초를 하면서 똑같은 다짐 해보구
우린 아버님 세대들은 벌초에 관여를 안하신지 오래이다보니
어짜피 종손인 내가 주관을 해서 점심전에 끝내구 점심먹구 잠시 놀다가? 헤어지는게 일상이었다.
처음 시작할때 내 키보다 무성히 자란 풀들을 보면
애휴 이걸 언제 다하지? 하는 막막함이 들지만
왱왱 소리에 지쳐갈 즈음엔 비로소 제 모습을 찾는 봉분을 보면 신기한 마음도 생긴다.
추석 당일날 어떤때는 비가와서 성묘를 못한적두 있지만
벌초하는 날은 말그대로 때약볕이 아닌 날이 없었다.
허긴 날 좋을때를 잡아서 해야해서 그런거지만 암튼 덥지 않았던 날은 없었구
벌초를 끝내면 거의 지친 상태...
앞서도 얘기를 했지만 올해는 관리를 틈틈이 해서...ㅎㅎ
헌데 올해는 실제로 이런 경우가 실현이 되었다.
난 모르구 있었는데 네째 작은 아버님이 돌아가셔서 선산에 함께 자리를 했는데
사촌동생이 작은 아버지 묘를 관리 하면서 함께 할아버지 할머니 묘도 관리를 했다고 한다.
실제로 가보니 할아버지 할머니 묘는 잡풀들이 다 없어진 상태였고
ㅎㅎ 정말 기특한 동생이지 않나?
바쁜 틈에도 찾아와서 이리 관리 하기가 쉬운일이 아닐진데
본인이 해야 할일을 떠넘긴거 같아서 좀 미안한 마음두 들지만
동생 덕분에 올 벌초는 아주 수월하게 해낸것 같다.
사실 벌초를 끝낸후에는 시간적 여유를 좀 가져서 할아버님과 대화도 좀하구
그간 일어난 일들에 대하여 고할건 고하구 했어야 하는데
뭐그리 바쁜척인지 일찍 끝내구 촌각을 다투어 처리할일두 하나두 없건만
서둘러 그 자리를 뜬게 지금까지의 정례화된 행동 이었다.
오늘 같은 경우도 증손자 제대한것두 알려 드리구 아들2 대학 진학두 고 해야 했는데
그 날씨 좀 덥다구 무슨 도망치듯 내려 왔으니...
이리두 못난 그리구 부족한 후손이니 참으로 면목이 없다.
담주 추석날 정식으루 성묘 하면서 정식으루 인사 올려야지...
동생 녀석 넘 고마워서 내년에두 부탁한다구는 했는데...
적어도 한두번은 함께 해야겠다는 다짐 다시한번 가져본다.
왱왱거리며 돌아가는 제초기에 잘려 나가는 잡풀들을 보면서
그 잡풀에 세월이 묻어서 베어져 나가는 느낌이다.
저리 무성해진 풀들을 볼만큼 한번두 찾아 뵙지를 않은거라는 사실에 면목두 없구...
잘라져 나가면서 허공으로 바람에 실려 날리는 풀조각들 사이로
지난 세월 할아버님과 함께 한 추억이 스쳐간다.
내가 과연 지금 당신이 바라던 모습의 손자로써 이 자리에 서 있는 것인가? 하는
그 기대에 충족치 못한 인생이었다는 죄스런 마음두 오버 랩 되어지구
비록 얼굴본지 짧았던 증손자들 이지만
녀석들 만큼은 증조 할아버지가 원했던 모습의 증손자 들로써 살아가기를 바래본다.
사실 애비로써 아들들에게 바라는것은 없는건가?
울 아버지 나에게는 어떤 인생이길 바랬을까?
한해 한해 보내며 맞는 벌초 하는 날의 느낌이 다르게 전해져 온다...
내년에는 어떤 마음의 자세를 느낄 벌초하는 날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