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개밥바라기

도.란 2010. 8. 23. 22:52

 

갑자기 개밥바라기 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우리가 금성을 개밥바라기 라고 하는데 이는 가장 먼저 뜨는 별을 지칭한다.

개밥바라기는 왜 그리 다른 별들과 함께 뜨지를 않구 홀로 그리 서둘러 오는걸까?

어찌보면 너무도 서둔다는 느낌을 주는 개밥바라기 이지만 난 그러한 개밥바라기가 좋다.

평소에 개밥바라기 처럼 부지런한 인생을 살라고 난 아이들에게 강조한다.

본인이 그리 부지런한 삶을 살지 못해서인가?

사실 요즘처럼 가르친다는 행동이 너무도 막막했을때도 없었던것 같다.

공자의 시대처럼 인간의 근본인 仁을 가르칠수 만은 없는 것이구

그렇다구 해서  최첨단 과학 지식만을 가르칠수만은  또한 없는 것이구

그런면에서 비유 하자면...

금성은 과학적 지식의 가르침이요

개밥바라기는 인성의 가르침이라 여겨볼수 있다.

 

우린 살아 가면서 개밥바라기가 되어야 하겠다.

좀더 부지런한 삶을 살아 가면서 내실을 기한다면 틀림없이 나중에 후회할일이 절대 없을것이다.

'이런 인생을 살아야 한다.'라고 자신있게 말할수 없는것이 현실이다.

평생을 타인을 위한 희생적인 삶을 살아온 훌륭한 어른이 말년에 고생을 하는 모습이 목격되구

인생 한방 이라구 그야말로 로또 한방에 수십년을 노력해서 모을수 있는 부를 한방에 거머쥐구

보란듯이 살아가는 현실에 있어서 과연 난 아이들에게 노력해 가는 삶이야말로

인간에 있어서 가장 숭고한 삶일지니 반드시 추구해 나가라고 다그칠수 있을까?

설혹 그리 주장 한다고 해도 아이들이 그 말을 따라와 줄까?

무릇 가르침이란 무엇일까?

뭔가 배우는 대상이 그 가르침을 통하여 뭔가를 얻을수 있는것 그걸 가르침이라 할수있다.

얻는것 하나 없는 가르침이란 결코 가르침이 될수가 없다.

이러한 가르침을 통한 실천의 문제는 차후로 치자.

일단 가르침이란 그것이 형이상학적이든 형이하학적 이든 가시적인 성과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은 당연히 공자.맹자의 시대가 아닌 하루가 멀다하고 새로운 지식이 양산되고 있는 시대이기에

그 시대를 무시하지 않는 그러한 가르침이 필요한 시기라구 볼수가 있다.

 

난 누가 뭐라하던지 아이들에게 개밥바라기를 닮아야 한다고 주장 할것이다.

녀석들이 나의 이러한 가르침을 무슨 뜬 구름 잡는 이야기냐구 무시할 지라도

이렇듯 획획 돌아가는 시대에 있어서 적어도 나같은 시대에 뒤쳐저 보이는 존재도 하나쯤 있어야 되지 않을까?

그것이 어찌보면 점점더 물질 만능주의로 젖어 들어가는 시대의 흐름에

객기어린 반항으로 비추어 진다 하더라도 난 그렇게 가르칠 것이다.

부지런한 인생을 사는것이 결코 후회하지 않는 인생이라고 자신있게 주장 하지만

그것이 나중에 먼 인생길을 걷구난 후에 느껴지는 것이라

지금의 현실에서는 그리 와닿지 않음이 안타까울 뿐이다.

내일은 개밥바라기나 하염없이 바라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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